등산로의 무수한 계단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풀 꺾인 더위가 반가워 오랜만에 가방을 꾸려 친구와 북한산에 갔다.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 골을 타고 밀려오는 바람. 숲 사이로 드러난 암벽. 그 길을 걸을 생각만으로도 설렜다. 그러나 정상부에 이르러 우리는 새로 놓이고 있는 계단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그렇잖아도 몇 년 전부터 설악산 관악산은 물론 동네 산에까지 계단이 하나둘 놓이기 시작하더니 언제부턴가 온통 계단천지가 되었다. 이젠 그만 놓겠지, 이게 마지막이겠지 하는 몇 년 동안에도 계단은 계속 가지를 치듯 산을 휘감고 있다.
완만한 등산로는 물론 바위구간, 들입부터 정상부까지. 주변이 숲이어서 그 곳이 산인 줄 알지 무수한 계단을 오르내리다보면 산을 오르는지 도심 한가운데 빌딩을 오르는지 구분이 되지 않을 지경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의하면 앞으로도 계단을 더 설치할 것이라고 한다. 대체 어디에 더 계단을 놓겠다는 건지.
등산객들의 안전과 산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데 과연 계단이 등산객과 자연을 보호하는지 한번쯤 되짚어볼 일이다.
* 등산객의 안전,
실제로 산에서의 사망 사고는 심정지가 가장 많고, 추락사고. 발목 삠 등은 단순 주의력 부족이라 산에서 못지않게 도심에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설혹 그런 사고조차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계단만으로 얼마나 많은 위험을 없애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오히려 계단은 등산객들의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계단은 길을 가파르게 오르는 것이다. 자신에게 적당한 높이와 보폭을 선택할 수조차 없다. 저마다의 보폭은 무시한 채 더구나 수직의 일률적인 계단을 오르내리다보면 건강한 사람의 관절도 무리가 오기 마련이다. 이는 결국 무릎에 많은 부담을 주어 조직에 손상을 가져오고 조직 손상이 누적되어 퇴행성관절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산 길은 더욱 무릎에 무리가 간다. 또한 한여름엔 뙤약볕에 그대로 노출이 되는 구간이 많다. 강렬한 볕에 장시간 노출되지만 기나긴 계단 안에서 피할 길이 없다.
더불어 산에서는 자잘한 자갈이나 낙엽이 쌓인 길을 조심하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평평하지 않은 길에서는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매 걸음마다 집중하며, 비탈을 오르내릴 땐 필요에 따라 손을 쓰기도 한다. 그때 쓰이는 근육은 오직 수직으로 몸을 끌어올릴 때 쓰이는 근육과 다르다. 일률적인 계단과는 모든 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다양한 모습을 한 길을 걷는 동안 일상의 삶에서 놓친 지혜를 깨닫기도 한다.
* 자연보호
산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거미줄 같은 계단이 최선일까.
뿌리가 휑하니 드러난 나무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제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쓰러진 나무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때문에 최대한 뿌리를 밟지 않기 위해 걸음을 조절한다. 그러나 등산객들의 발길로부터 나무의 뿌리를 보호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계단이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산을 보호하겠다는 이유만이라면 등산로를 벗어나지 못하게 예전처럼 금줄을 쳐놓으면 될 일이다.
그리고 등산로의 토사유실이 과연 등산객의 발길 때문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니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것은 극히 미량이고 토사가 유실되는 가장 큰 이유는 낮은 곳으로 모여 흐르는 빗물 때문이다. 그것은 비 오는 날 산에 가면 누구나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작은 양의 빗물이라도 모여 흐르면 흙이 쓸려내려 가며 금방 골이 생긴다.
사람들이 다니는 등산로는 전체 산의 극히 일부이다. 나무들도 적당한 간격이 있어야 바람을 쐬고 병충해에 강해진다. 폭 1미터도 되지 않을 샛길 정도는 오히려 나무들 간의 간격으로 적당한 수준인 것이다. 실제로 숲이 빽빽한 지역은 일부러 나무를 솎아주기도 한다. 더구나 자연을 보호하려는 시민의식도 상당한 수준이어서 무분별한 샛길은 사실상 거의 없다.
자연을 보호하는 일이 강박에 가까워 오히려 산을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되짚어 볼 일이다. 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1~2미터의 널찍한 계단을 놓는 것이 자연을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계단을 오르는 동안에는 다람쥐도 키 작은 들풀도 골을 타고 올라오는 바람도 마주칠 일이 없다 그저 똑같은 보폭의 걸음 뿐이다
한강의 콘크리트를 걷어냈듯, 바닷가의 인공 옹벽을 걷어냈듯 언젠가는 등산로의 계단을 도로 철거하느라 또 산을 들쑤시게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자연에 인공물은 최소한이어야 한다.